난임

[임신준비] 2개월동안 겪은 임신과 유산의 경험

오키짱 2023. 3. 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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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유산 과정 중 수면장애를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9/24 이식. 회사 하루 휴가. 이날부터 심장소리 들을 때 까지 질정과 주사를 계속 사용함.

10/5 이식 12일차 1차 피검사, 결과를 전화로 알려줌. 수치 342.

10/8 이식 15일차 2차 피검사, 토요일 오전에 채혈하고 오후에 전화로 결과 알려줌. 수치 651.

10/15 병원 방문 초음파 보고 임신확인서 발급. 배주사 추가.

10/29 2주후 심장소리 듣는 날. 이상소견 발견. 5일후 재방문 필요.

11/3 초음파 최종 확인. 소파술 권고.

11/4 소파술. 동시에 염색체검사 실시. 회사 일주일 휴가.

 

 

 

이식한 이후부터는 임신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조심조심히 해야 한다. 달리기 안됨, 늦어서 버스타려고 뛰는거 안됨, 이상한 음식 먹으면 안됨, 술 당연히 안됨, 약도 가려가면서 먹어야함, 무거운거 들면 안됨..... 등등 임산부에게 요구되는 조심스러운 행동들을 임신인지 아닌지 모르는 예비임산부로서 해야 했다. (슈뢰딩거의 임산부) 설렁탕과 추어탕, 고단백질이 주식이었다. 이식 후 며칠쯤 지났을 무렵 갈색의 피비침이 약하게 있었고, 병원 피검사수치를 확인한 후 그것이 착상혈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피검사만으로는 임신확인서를 끊어주지 않는다. 초음파를 보고 아기집을 확인해야 임신확인서에 도장을 꽝 찍어주는데, 이 날은 그동안 콧대높았던 차병원도 축하한다며 초음파사진을 친절하게 출력해주었다. 임신확인서는 병원의 전산을 타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자동으로 전달되는가보다. 국민행복카드를 발급신청하고 (맘스홀릭네이버카페에 들어가면 어느 카드사에서 발급하는 것이 가장 혜택이 많은지 보기좋게 비교되어 있다.) 바우처를 신청하면 의료비로 100만원을 쓸 수 있다. 육아용품등을 둘러보고, 휴직계획을 고민하고, 회사에 임신사실을 알렸다. 임신초기 단축근무가 가능하고, 하루에 2시간씩 덜 일하면서 월급도 깎이지 않는다. 나는 이 시기에 "임신한게 무슨 벼슬이냐, 나는 잔병치레 없이 튼튼한 몸이고, 내 공석 때문에 동료직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이 시기 몸상태의 변화는 입덧이 생겼고 (공복이 되어 배고픔이 느껴지거나, 이상한 냄새를 맡으면 울렁거려 참크래커와 마이쮸를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다.)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회사 식당에서는 김에 밥 싸먹었고, 집에서는 국 속에 들어있는 고기가 괴롭게 느껴졌다. 아. 이식 직전에 호르몬때문에 생전 처음보는 물방울같은 두드러기가 온 몸을 뒤덮었는데, 이식 직전까지만 난임병원 간호상담실의 의견을 들어 피부과 약을 쓰고 (피부과에서 진료보다말고 차병원에 전화해서 물어봄), 이식 이후로는 약을 쓰지 않았다. 프로기노바 복용을 멈췄더니 두드러기도 멈췄다.

 

여전히 질정과 호르몬주사는 유지했고, 원래 먹던 씬지로이드도 멈출 수 없었기에 시간 배치가 중요했다.

 -씬지로이드 특) 공복 3시간 유지 후 1정 먹고, 이후 1시간을 공복으로 유지. 영양제도 1시간 이후로 미루기.

 -질정 특) 매일 일정한 시간에 한 번 넣고 10분 누워있기 (처음 처방받은 유트로게스탄정은 하루 3번 넣고 10분 누워있어야 하고, 속옷에 잘 흐르면서 이취가 수시로 나서 일상생활이 어려웠음. 병원 주치의 선생님 추천으로, 하루 1번 넣는 크리논겔로 바꿔보니 삶의 질이 달라짐.)

 

이 때문에 새벽 5시에 씬지로이드를 먹고, 잠깐 쉬다가 6시에 질정넣고 10분 누워있은 후, 아침을 챙겨먹고 나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게 무리가 아니었던 것이, 임신기간 중 심한 불면증이 생겨 2시, 3시, 4시에 잠에서 깨고 다시 잠에들 수 없었던 생활을 하게 되었다.

   

 

 

2주 후 초음파로 모양을 확인하고,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 방문. 참고로 차병원은 임신 후 첫 심장소리를 남편과 함께 가서 들을 수 없다. 코로나때문에 보호자 동행 금지라는 이해할 수 없는 규칙이 있음. 이 때 이상소견 발견되어 5일 후 다시 확인해보고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 소파술로 임신을 중단시킬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이상소견이 있을 때도 남편은 주치의선생님 상담시 동석만 가능하고, 초음파 사진을 볼 수 없었다. 이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안타깝게도 5일 후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고 바로 다음 날 오전에 소파술 일정을 잡아 수면마취로 수술을 받고, 잠시 회복 후 병원을 나왔다. 공허한 마음에 집으로 바로 갈 자신이 없어 어머님댁으로 가 점심 한끼를 든든하게 얻어먹었다. 수술 다음날부터 신기하게도 입덧이 싹 사라졌고, 나의 몸은 매정하리만큼 빨리 회복해 일상생활을 할 준비를 마쳤지만 마음이 참 힘들었다. 특히 남편의 슬픔을 발견하게 된 순간이 너무 힘들었다. 나를 재우고 혼자 거실에 앉아 울고있다든가, 산책하는 길에 유모차 끌고가는 가족을 보며 내 뒷쪽에 서서 조용히 눈물을 닦는다든가. 유산한 아내를 케어하기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나를 살뜰하게 챙겼지만, 남편에게도 보살핌과 위로가 필요한 것 같다. 차라리 나만 힘들었으면 좋겠다.

 

 

수술하고 휴가기간동안 차라리 회사에 가고싶었을 때, 차라리 다이소에 가 털실을 잔뜩 구매했다. 시간이 잘 가더라.
바람이 쐬고 싶을 때는 플라워 원데이클래스를 수강하기도 했다.
12월 한겨울에 눈을 보러 한라산도 올라갔다. 눈이 녹아버린 현장.
오래 전에 예매해놓은 콘서트도 신나게 보고 왔다. 중학교때는 걱정없이 TV보고 공연보고 살았던 것 같다.
월드컵 보면서 맥주도 마심. 한동안 안먹어버릇해 그런지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난임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유도제 멜라토닌

수술 후에 경과보러 차병원에 갔다가, 수면장애로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고 하니 아주 약한 수준의 멜라토닌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다음에 올 아이에게 영향이 미칠 수 있을 것 같아 최대한 먹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새 다섯 개가 비어있었다. 남편도 힘든 시간을 잘 버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산소식을 듣고 주변분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건 감기같은거다. 그냥 오는거다. 라고 하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 임신했음에도 몸관리를 못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내 탓이 아닐까, 배아 발달에 나와 남편의 건강상태가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자책하고 속상한 시간을 위로해주는 좋은 말씀들이 참 감사했다. 다행히도 우리는 아직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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