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갑자기 3년전에 한 번 맛본 적 있는 마제소바가 생각이 났다. 회사 앞 일본식당도 문을 닫고, 마제소바 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신기한 일이지. 불쑥 튀어나온 마제소바의 꾸덕한 맛에 대한 기억때문에 지난주부터 다시 맛보고 싶어 끙끙 앓다가 서쪽 사는 김에 맛집 검색을 해서 다녀오기로 했다. (요즘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장기기억을 담당하고 있는 해마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해마는 장기 기억을 담당하는 곳으로, 태어난 이후의 모든 기억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카라멘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7안길 34-1
0507-1320-6221
월요일 퇴근 후, 집과 가까운 신촌 카라멘야를 찾았다. 가볍게 마제소바를 먹고 얼른 집에가서 씻고 푹 쉬어야겠다는 멋진 계획이 머릿속에 있었다. 그러나 가게앞엔 이미 웨이팅이 한가득이었고, 가게 안을 흘긋 보니 저녁시간이라 그런가 테이블에 맥주 한두잔씩 있는 걸 보니 자리가 쉽게 날 것 같지 않았다. (월요일 저녁 일곱시였다.) 40분정도 대기했을까, 내 이름이 호명되어 드디어 들어가게 되었다. 키오스크에서 마제소바를 찾았는데... 잉? 마제소바가 안보인다. 직원분께 물어보니 품절이라는 것... 다른 메뉴는 둘러보지 않고 과감하게 가게를 나왔다. 휴 어쩔수 없지. 오늘의 목표는 칼칼한 라멘도 아니고, 기름진 차슈도 아니고 오직 마제소바다.
칸다소바 홍대점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51-6
0507-1375-1660
나는 이미 다 계획이 있었다. 지난주에 검색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내 머릿속에 네이버지도가 펼쳐지며 내 몸은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칸다소바는 경복궁점이 가장 인기가 많은 것 같았고, 혹시나 일곱시반에 도착했는데 품절되진 않을까 걱정되어 홍대로 갔다. (사실 홍대는 아니고 상수역에 가까웠다.) 다행히 웨이팅 없이 들어갈 수 있었고, 여기는 바 자리에 혼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웨이팅많고 붐비는 가게에 혼밥하러 들어가서 딱 한 그릇만 시키면 미안할 때가 있는데, 이런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좌석 구성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거다. 해마의 장기기억에 있던 그림이자, 지난주에 인터넷 검색으로 단기기억에 저장되었던 그 비주얼이다. 얇고 쫄깃하고 촉촉한 우동면에 소고기볶음, 알 수 없는 정체의 갈색가루 (가쓰오부시일까 멸치가루일까), 입을 열 수 없게 만드는 알싸한 대파 쪽파의 잔치. 노른자는 화룡점정이지. 노른자를 딱 깨뜨리면서 식사 시작이다. 섞어서 반정도 먹고 다시마식초를 뿌려 먹은 후, 면을 거의 다 먹어갈때 쯤 무료로 주시는 밥을 말아먹는 것이 정석이라고 했다.
다시마식초는 생각보다 입에 맞지 않았던 것 같고, 밥은 너무 배불러서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먹으면서 고기와 춘장을 볶은 고소한 짜장면의 맛과도 겹쳐지는 느낌이었는데, 파가 많아서 감칠맛과 알싸하고 개운한 맛도 나는 것 같았다. 아, 레드락 생맥주도 한 잔 했는데 같이 곁들여 먹으니 월요일 출근으로 다운됐던 기분이 다시 일요일 저녁처럼 올라왔다. 궁금한 건 못참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성격의 장점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더는 여한이 없다는 것. 당분간 정말 여한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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